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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면천군 엄의공 박술희

일배송경조알도 ( 日拜松京朝謁圖 )
의정부 면천대

 

면천박씨는 신라 제 5 대왕인 파사왕 ( 婆娑王 ) 의 21 世 孫 인 술희 ( 述熙 ) 께서 고려국 ( 高麗國 ) 개국공신 ( 開國功臣 ) 으로 태사삼중대광 ( 太師三重大匡 ) 을 역임하시고 면천군 ( 沔川君 ) 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이 어른을 시조 ( 始祖 ) 로 모시고 관향 ( 貫鄕 ) 을 면천 ( 沔川 ) 으로 하여 세계 ( 世系 ) 를 이어왔습니다 .

원래 모든 朴氏 는 본관 ( 本貫 ) 을 통틀어 신라 ( 新羅 ) 시조왕 이신 혁거세왕 ( 赫居世王 ) 을 원시조 ( 元始祖 ) 로 모십니다 . 따라서 모든 朴氏 는 한 할아버님을 모시는 같은 혈통을 지니게 됩니다 .

朴氏 1 世 赫居世王 , 4 世 파사왕 ( 婆娑王 - 신라 5 대왕 ), 그리고 망부석 ( 望夫石 ) 으로 유명한 신라 충절의 대명사인 관설당 박제상 ( 觀雪堂 朴堤上 ) 은 9 世 로서 우리의 직계 祖上 이 되시며 우리 면천박씨 始祖 님인 述熙 님은 朴氏 세계 ( 世系 ) 로는 25 世 가 되십니다 .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면천대

始祖 님은 역시 三重大匡 이셨던 득의 ( 得宜 ) 님의 아드님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호협하고 용맹스러우며 특히 신의가 출중 하셨습니다 .

왕건 ( 高麗太祖 王建 ) 을 도와 후삼국통일 ( 後三國 統一 ) 과 고려창업 ( 高麗創業 ) 에 크게 공을 세우셨습니다 . 그후 太祖 가 승하하실 때에는 가장 신임 하던 始祖 님을 편전 ( 便殿 ) 으로 친히 불러 후사 ( 後事 ) 를 부탁하며 훈요십조 ( 訓要十條 ) 를 전수 ( 傳授 ) 했다고 합니다 .

始祖 님께서는 오직 高麗 太祖 와 2 代 혜종 ( 惠宗 ) 을 위하여 온갖 충성을 다하시다가 정치적 딴 뜻이 있는 간악한 무리들에 야합하지 않으시고 끝내 이들에 의하여 현 강화도 갑곶 ( 甲串 ) 에서 희생 되셨습니다 .

그 후 정국 ( 政局 ) 이 안정되면서 사필귀정으로 무고임이 밝혀져 모든 관직이 회복 되시고 엄의 ( 嚴毅 ) 라 시호 ( 諡號 ) 를 받으시고 혜종묘정 ( 惠宗廟庭 ) 에 배향 ( 配享 ) 되시었습니다 .

박술희장군기념공원 및 설단 ( 면천대 ) 면천면 성상

 

高麗末 에 이르러 국운 ( 國運 ) 이 쇠약하여 이성계 ( 李成桂 ) 가 朝鮮 을 세울 때 당시 공조전서 ( 工曺典書 ) 로 계시던 諶 ( 심 - 始祖 님의 17 世孫 ) 은 두문동 ( 杜門洞 ) 七十二賢 의 一員 으로 高麗 의 부흥을 꾀하시다가 결국 힘이 모자라 불사이군( 不事二君 ) 의 충절로 海州 땅에 은거 ( 隱居 ) 하며 절의 ( 節義 ) 를 지키셨습니다 .

매일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의 송악 ( 松岳 ) 을 기리며 절을 올리시던 모습은 일배송경 조알도 ( 日拜松京朝謁圖 ) 에 담겨져 지금도 전해지고 있으며 그 산은 高麗山 이라 불려지다가 지금은 그 일대가 고산면 ( 高山面 ) 이라는 행정구역이 되어있고 우리 沔川朴氏 의 집성촌 ( 集姓村 ) 으로 되어있습니다 .

우리 沔川朴氏 는 이와 같이 高麗 의 창업 ( 創業 ) 과 종말 ( 終末 ) 에 그 이름이 두드러집니다 . 그리고 高麗 에 대한 충절을 특히 강조한 나머지 李氏朝鮮 에 와서는 별로 출세를 하지 않은 경향이 있습니다 .

그중에는 심 ( 諶 ) 님의 아드님 수생 ( 秀生 ) 이 승의교위 ( 丞義校尉 ) 로 부사정 ( 副司正 ) 을 역임했고 , 그의 아드님 거신 ( 居信 ) 이 벽동군수 ( 碧潼郡守 ) 를 거쳐 병마절제사 ( 兵馬節制使 ) 로 무명 ( 武名 ) 을 떨쳤으며 공조판서 ( 工曺判書 ) 를 지내고 상의원판사 ( 尙衣院判事 ) 를 역임한 유 ( 攸 ), 그의 아드님 효순 ( 孝順 ) 은 병조참판 ( 兵曺參判 ) 을 거쳐 훈련원정 ( 訓練院正 ) 에 올라 명성을 떨쳤으며 그의 아드님 삼길 ( 三吉 ) 은 성종때의 문신으로 이조참판 ( 吏曺參判 )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 ( 五衛都總府 副摠管 ) 을 역임하셨습니다 .

한편 거신 ( 居信 ) 의 증손 여룡 ( 汝龍 ) 은 이율곡의 수제자로서 호조좌랑 ( 戶曺佐郞 ) 을 거쳐 공조정랑 ( 工曺正郞 ) 에 이르러 스승의 유집을 간행하셨고 임진왜란때는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워 이조판서 ( 吏曺判書 ) 에 추증 되시고 文溫 이라 시호를 받으시고 海州 석담의 방현서원 ( 傍賢書院 ) 에 제향되시었습니다 .

그 외에도 병자호란때 전공을 세우신 성렬 ( 成烈 ), 참찬관 ( 參贊官 ) 을 지내신 치기 ( 致岐 ), 좌승지 ( 左承旨 ) 처용 ( 處庸 ), 중추부사 ( 中樞府事 ) 태제 ( 泰齊 ), 사복시정 ( 司僕寺正 ) 여직 ( 汝稷 ), 그리고 소위장군 ( 昭威將軍 ) 의용 ( 義容 ) 등이 이름을 떨쳤습니다 .

우리는 이렇게 훌륭한 先祖 님의 後孫 임을 항상 감사하고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 비록 수는 적지만 기품 ( 氣品 ) 있는 가풍을 당당하게 지켜 나가야 합니다 . 선조님들께 부끄럽지 않은 자손으로서 , 끊임없이 수양과 학문을 닦고 기예를 연마하여일신의 영화는 물론이요 가문을 빛내고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보람 있는 인물이 돼야겠습니다 . 이것이 또한 조상님께 보은 ( 報恩 ) 하는 길이 되겠습니다 .

지금 시대는 자기 부모를 포함하여 선조를 자랑스럽고 소중하게 생각하면 스스로 양반이요 , 조상을 비하하고 제 잘못을 조상에게 돌린다면 스스로 상민이 되는 것 입니다 . 옛날같이 관직의 높낮이로 가문을 평가하던 시대는 이미 갔습니다 . 이점 특히 명심 ( 銘心 ) 하시기 바랍니다 .

참고로 1985 년 조사에 의하면 면천박씨의 한국내 인구는 4,100 명이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