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沔川 朴氏의 中始祖이신 沔川君의 17世孫이신
諶(심)字 海隱(해은) 할아버님께서는 高麗의 工曹典書
(공조전서: 현 통산부,농림부,건교부,정통부 장관에
해당함) 로 계실때인 1392년에 만고충신이신 圃隱 鄭夢周
(포은 정몽주) 선생이 李成桂 (이성계) 일당인 趙英珪,
高呂등에게 개성 善竹橋에서 殉節당하심을보시고 뜻을
같이하시던 忠臣 일흔한(71)분과함께 杜門洞으로 들어가
高麗 復元運動을하시며 李王朝의 出仕(출사: 벼슬하는것)에
끝내 불응하자 이성계의 5男인 李芳遠(이방원: 후에3대 태종)
이 일흔두(72)분의 초막에 불을놓아 두문동을 초토화시키는
바람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가실때 海隱할아바님께서는
蔡貴河(채귀하), 李孟芸(이맹운) 두(2)분의 典書들과함께
碧瀾津 (벽란진) 에서 배를 타시고 서쪽의 海州로 향하시던중
高山 立岩村에 이르다보니 산머리에 우뚝 서있는 선바위가
보이는데 그 모습이 굽힐줄 모르는 충신의 氣像과같으므로
그곳을 은거지로 삼으시고 朝夕으로 松都쪽을 향하여 옛 高麗
임금을 배알하며 눈물을 흘리셨음은 忠君愛國의 至誠이 가이
없음을 뜻하는것이요,망국의 遺恨(유한)을 참지 못하심입니다.
이에 拜謁의 禮가 하도 지극하고 애절함에 敵對視하던 李王朝
조차 감복하여 만인을 위한 충절의 표상으로 그 모습을 그려
朝謁圖로 남기게하였습니다.
조알도 진본은 전남 장성군의 景賢祠 (경현사)에 봉안되어왔으나 (杜門洞 72賢을 함게 配享했음)
日帝때 조선총독부에서 우리 백성들의 충의사상을 말살코자 경현사를 폐쇄할때 조알도도 함께
행방불명 되었습니다. 만일 진본이 남아있다면 국보급 유물이겠으나 불행히도 소재를 알수없어
문헌상으로만 전해오던중 천만다행으로 成仁錄 (성인록: 1924년 增修版) 109항에 “海隱先生朝謁圖”
가 흑백사진 1장으로 수록되어있음이 발견되어 오늘에야 이를 복원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반목하던
李王朝도 감복하였던 그 충절, 온 나라가 자랑스럽게 여겨야할 조알도가 아닐수없습니다.
하물며 그 후손인 우리 沔川朴氏에게는 더없는 가문의 영광임을 자각하시여 각자 家庭에 家寶로서
소중히 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參考文獻)
杜門洞書院誌, 高麗名臣傳, 成仁錄, 麗末忠義列傳, 麗朝忠列錄, 高麗忠臣列事傳, 景賢祠誌, 松都誌,
不朝峴言誌, 勝口名流慓榜錄 등에 海隱 할아버님의 기록이 많이있으며 또한 海隱 할아버님은
圃隱 鄭夢周 선생의 首弟子중 한 분이셨음을 참고로 말씀드립니다.